연구 일지 Text Audio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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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템플러 도미누스께서 되찾아온 유물들이 드디어 그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진작부터 대단한 무언가가 숨어있을 거라고 짐작은 하였지만, 어제의 발견으로 찾아온 희열은 그 이상이었다. 바로 유물에 내재한 타락의 진동수를 알아낸 것이다! 이토록이나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니! 과거의 그림자와 메아리를 마치 거울처럼 어둑하게 비추어 보여주는 물건이었다.

이를 통해서 고대 도시의 환영에서 희생 의식과 혈흔을 보았다! 바알인들이 고향에서 저질렀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 모습을. 바알의 문화가 오리아스 해안까지 전해졌던 흔적일까? 아니면 이 섬에 제국 이전에 세력을 떨쳤던 다른 나라가 있었던 것일지도?

유물의 속삭임을 더욱더 들어서 이해해내야 한다. 하지만 노래가 길어지니 듣는 게 고통스럽다. 속도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진행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너무나 많은 것이 여기 걸려 있단 사실이 확실히 느껴진다.

- 테오폴리스의 템플러 다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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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바로다. 템플러이자 마석학자이며, 황홀해 하는 자이자 비사의 수득자, 고대의 신비에 대한 열쇠가 바로 이 몸이다!

잠깐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유물이 불러주는 노래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사실 엄청난 지식을 알려주는 속삭임이 이제는 감미로울 지경이다. 내가 알아낸 바는 이러하다. 바알인들은 한때 이 섬에까지 영역을 넓혀왔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이들의 도시가 있었으며 그 폐허에는 지금도 엄청난 힘이 잠들어 있다. 다만 아직 한 걸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마석학을 이용하여 굉장한 장면을 보았다. 이 자리에 있었던 고대 바알의 도시였다. 전설적인 앗지리 여왕이 멀리서나마 이 땅을 다스렸다는 흔적이 사방에 가득했다. 나는 거대한 피라미드의 바닥에 서서, 새로 거둬들인 희생물들을 보고 있었다. 피의 강이 된 계단에서 선홍빛 파도가 밀려와 내 피부를 뒤덮었다. 그 안에서, 마치 번개가 내 몸을 관통하는듯한 굉장한 떨림이 느껴졌다. 피의 의식이 품고 있던 힘을 실감하는 순간, 어느새 나는 현실의 고대 폐허로 돌아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그저 꿈인가 싶었지만,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려다 소름과 전율이 온몸에 솟았다. 두 손이 핏빛에 절어있었다.

- 테오폴리스의 템플러 다바로, 고대 신비에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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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일종의 피의 표식인 듯하다. 현실은 물론이고 꿈의 세계까지 이 저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따라온다. 유물에서는 힘을 노래하던 속삭임은 사라지고 굶주린 비명만이 들려온다. 허기진 아이가 자제 없이 울어대듯 더 많은 피를 찾아댈 뿐이다. 내가 저 고대의 존재를 알아냈으니, 저들도 더는 침묵할 이유가 없겠지!

처음에는 그저 깨워냈구나 싶었던 것이 이제는 고통스럽다. 어떤 방도를 쓰더라도 얼굴과 손의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것을 없는 셈 칠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 아침에는 카루이 노예 셋을 열 일곱 살인 녀석들로 골라서 샀다. 고대의 폐허에 준비해둔 피의 의식 장소로 데려가자 노예들은 내게 울며 간청하였지만, 돌뿌리까지 파고든 타락이... 말을 걸어왔는지 이내 조용해졌다. 힘이 피를 바라기에 바쳤을 뿐이다. 노예들의 목을 갈라 앗지리의 제단에 피를 쏟아냈다. 피비린내 나는 액체가 돌 위에 흐르는 순간에, 나는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앗지리 여왕을 보았다. 피의 욕조 속에서 나체로 흥분하며 허벅지 사이에 손을 집어넣는 모습을.

나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침대에 누워서도 공포와 기대에 몸이 떨린다. 한 여자에게 이토록 거대한 욕망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었구나. 여왕이 나의 죽음을 바라더라도 거부할 수 없으리라. 눈을 감으면, 나를 품으려 다가오는 그녀가 보인다.

- 템플러 다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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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오로지 아름다운 여왕만이 보인다. 그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에 있음을 이제는 안다. 비록 분리된 세상이지만 오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꿈을 꿀 때면 우리는 우리가 죽인 이들의 굳은 피 위에서 사랑을 나눈다.

곧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피를 나눈 혈육보다 가까워질 것이다. 주문을 하나 배웠다. 템플러들에게는 금지된 피의 마석학이지만, 저들은 자신들이 금지한 힘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창 밖의 테오폴리스 거리는 경악에 빠져 있다. 귀족 가문의 아이 두 명이 밤중에 실종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순찰병들이 거지와 시민들을 검문하고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봤자 소용없는 일이지. 꽤 소중하게 사용해 주었으니. 여자아이는 시작하기도 전에 기절했고, 남자아이는 조금은 용감해서 그 말랑한 뱃살을 칼로 갈라놓는 순간에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지금은 둘 다 조용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나도 곧 그리되리라. 우리 셋은 여왕과 함께 행복한 가족이 될 것이니. 남편, 아내, 딸, 아들. 옆에 둔 칼에서는 아직도 방울방울 피가 떨어진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나와 같은 기쁨을 찾아낸다면,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 템플러 마석학자, 다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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