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제본 항해 일지 Text Audio /1
이름
이 잡놈들이, 부츠를 핥거나 수염을 다듬는 데에도 못 써먹을 망할 놈들이 감히 나를 배신했다. 그 개자식들을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나무판자 하나에 매달려 떠다니는 신세가 되다니. 노을의 온기마저 사라지고 있다. 수많은 집게발이 잘그락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감으면, 저 깊은 심해에서 내게로 뻗어오는 촉수가 보이는 듯하다.

염수왕이 왜 나를 선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주 전부터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돌아올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를 노예로 삼을 것이라고 말이다. 내 배의 돌대가리 놈들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믿음 없는 이들을 더욱 폭력적으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저 들을 생각이 없다 하는 이들이 그나마 나은 편이니 말 다 했지. 결국 놈들은 나를 갑판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내가 죽으면 내가 뱉은 예언들도 같이 사라질 거라는 허무한 희망이나 품고서.

아침 해가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녹색의 빛기둥이 바다 아래에서 솟아올랐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추측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저 심해에서 옛 신이 올라와 내 배와 모두를 내동댕이쳤다. 물도 음식도 없으니, 오늘 밤을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지금도 몸을 기어오르는 수많은 게가 내 뼈만 깔끔하게 남겨놓겠지.

이 글이 육지에 닿기를. 소아고스가 재래했다는 불경한 사실이 밝혀져 나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 기다리는 시녀 호의 선장 카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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