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타리오의 저술 Text Audio /4
이름 |
---|
{제1장: 칼리사 마스} 브렉토프가 작곡한 노래는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귀를 찢는 떨림음과 고음만 난무하는 음악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칼리사 마스가 날 바꿔놨다. 첫 번째 음부터 가슴으로 파고든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는 심장을 우리 밖으로 끌어내 줬다. 동그래진 눈을 빛내는 친우들을 보면서, 저들 역시 똑같은 느낌을 받았음을 직감했다. 지난번에는 안토니오가 할복하기 직전에 펼쳐지는 아리아에서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밤은 달랐다. 칼리사의 목에 박힌 마석이 별빛과도 같은 광휘를 흩뿌리자, 객석에 있던 유리잔들이 '올림 다' 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공연은 황급히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에 무대 계원들은 음료수와 파편을 치웠으며, 의사 둘은 흩날린 유리 조각에 베인 관객들을 치료했다. 힘의 마석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군부나 관료 측에서 말라카이에게 기적을 일으키는 수정을 이식받으려고 안달을 내는 것 때문에, 제국의 군단병과 인부들이 신체를 훼손하는 일을 당연한 것라고 곡해하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다 칼리사 마스를 통해서 마석이라는 게 필멸자란 제약을 벗어나, 그 사람의 상상력과 영혼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뭘 따라야 할지도 모르겠다. 칼리사는 예술가일까, 아니면 예술품일까? 재능과 수줍음을 갖춰서,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그녀와 동일인이긴 한 걸까? 애초에 진짜 사람이라고 할 수나 있는 걸까? { - 사안의 빅타리오} — 읽기 |
{제2장: 새까만 원숭이} 강둑을 거닐면서 한가로이 오후를 즐기던 원숭이 왕은 문득 털이 부슬거리는 어깨너머를 봤다. 새까만 원숭이 한 마리가 자신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왜 짐을 따라오느냐?" 원숭이 왕은 새까만 원숭이에게 강둑을 산책하는 동안에 나타난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언짢다는 듯이 말했다. "폐하께서 가시는 곳이 제가 가는 곳이며, 폐하께서 계시는 곳이 제가 있는 곳입니다." 새까만 원숭이가 말했다. "짐이 가는 길에, 머무르는 곳에 그대가 따라오길 원치 않는다면 어쩌겠느냐?" 한껏 짜증이 난 원숭이 왕이 침을 뱉어대며 횡설수설했다. "희망과 현실은 다른 법이지요, 폐하." 새까만 원숭이는 바나나 과즙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짐은 원숭이 왕이로다! 원하는 바대로 할 수 있노라!" 분노에 찬 원숭이 왕이 악을 쓰며 거품을 물었다. "희망과 현실은 다른 법이지요, 폐하." 새까만 원숭이는 나비의 날갯짓만큼 비단결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침을 뱉어대며 횡설수설하기도, 악을 쓰며 거품을 물기도 힘들 만큼 화가 치밀어오른 원숭이 왕은 발뒤꿈치를 들어 내달리기 시작했다. 강둑을 따라 달린 그는 물결보다 빠르고, 바람보다 빨랐으며, 상념보다 빨랐다. 원숭이 왕이 지상에서 가장 재빠른 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 원숭이 왕은 강과 산맥, 구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달려서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하지만 새까만 원숭이는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 "왜 짐을 따라왔느냐?" 원숭이 왕이 새까만 원숭이에게 애걸했다. "세상의 끝까지 와본 적이 있으신지요, 폐하?" 새까만 원숭이가 되물었다. "그랬던 적은 없노라." 원숭이 왕이 답했다. "그것이 폐하께서 가시는 곳에 제가 가며, 폐하께서 계시는 곳에 제가 있는 이유입니다." 새까만 원숭이는 죽음처럼 따스하고 아늑한 목소리로 답했다. { - 사안의 빅타리오} — 읽기 |
{제3장: 힘의 마석이 만들어낸 노예} 단조롭고 고된 일에 투입될 노동력이 또다시 하이게이트로 향했다. 대부분은 가이우스 센타리의 "교화 수용소"에 머물렀던 에조미어인들이었다. 검은 피부가 여기저기 있는 걸로 봐서는 카루이와 마라케스도 있는 모양이다. 말라카이가 저들에게 악랄한 짓을 시험하고 있었다. 제멋대로 늘어나고 뒤틀리는 팔다리에 두세 개의 관절이 생겨버렸다. 고향과 무덤의 틈과 균열에서 더욱 많은 마석을 캐낼 수 있게 되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따스한 고향에서처럼 앞을 보기 위하여, 태양을 피하며 두 눈이 검게 물들게 되었다. 족쇄를 찬 노예들은 북쪽으로 향하지만, 그들이 캐낸 마석은 영원한 제국의 상류층들이 권력과 특권을 누리는 사치스러운 남쪽으로 굴러떨어진다. 우리의 문명은 미개 부족의 피와 살점을 대가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언젠가는 되갚아야 할 빚이 되리라. { - 사안의 빅타리오} — 읽기 |
{제4장: 곤경에 빠진 친구} 사안의 여름은 땀구멍에서 흘러내려, 피부로 갓 내려앉은 땀방울마저 말라버릴 정도다. 로렌지와 나는 북쪽에서 공수한 각얼음을 커피에 띄워서 홀짝였다. 오늘밤에 말라카이를 만나서 손등에 마석을 이식하겠다고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는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한껏 욕설을 내뱉고 숨을 돌린 후, 탁자 위에 엎어진 커피를 종업원이 치우는 동안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래야 제국에서 제일가는 손놀림을 가질 수 있잖나." 그가 답했다. 사안 교향악단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내 친구였던 로렌지는 그렇게 마석병이 되었다. 열흘이 지나고, 로렌지의 손이 회복되었다. 그는 요양하는 도중에 작곡했던 곡이자 그날 저녁에 신의 극장에서 초연하기로 했던 곡을 연주해 주었다. 로렌지의 손가락이 현 위를 누비는 사이, 마석이 바이올린 위로 핏빛 광휘를 뿜어댔다. 사람의 안력으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손놀림. 손가락은 얼룩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가 연주한 곡과... 비견될만한 추억은 단 하나만 말할 수 있겠다. 마릴린이 죽기 전 함께 지샜던 밤에 비견될 순간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한 달이 지났다. 로렌지와 나는 페란두스 장터에서 또다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조그마한 탁자만 사이에 끼고 있을 뿐이었건만 로렌지는 여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2주 전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로렌지는 내가 약제상에서 구해다 준 약병을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과연 저걸 복용할까. 그러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손가락이 느려지는 것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음악에 모든 걸 바친 그는 마석을 곧 음악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또다시 땀구멍에서 흘러내려 피부로 갓 내려앉은 땀방울마저 말라버리는 나날들이 찾아왔다. 나는 얼음을 띄운 커피를 홀짝이며 로렌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지난밤 신의 극장에서 연주하던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재빠르고 맹렬했으며 놀라운 솜씨였다. 로비에서 그와 지나칠 때 잿빛으로 물든 얼굴과 창백해진 푸른 눈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어딘가로 향해 있었다. 그것은 로렌지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 { - 사안의 빅타리오} — 읽기 |
Edit
Wikis Content is available under CC BY-NC-SA 3.0 unless otherwise noted.
Wikis Content is available under CC BY-NC-SA 3.0 unless otherwise no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