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안의 서신 Text Audio /1
이름
신께서 하고자 하셨다면, 일등 항해사인 나 파이켄의 이야기는 황혼의 해안 언저리에 조난되며 끝났을 테지.

일단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선원들은 카루소 선장과 함께 모조리 죽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다행일지도. 무슨 일이 있었냐고? 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새벽에 저 파도 아래에서 암녹색의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우리 대부분이 경외심으로 그 빛을 바라보는 와중에, 하갑판에서 울음 어린 비명이 들려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바닷게가 파도를 타고 선체를 뒤덮고 있었다. 셀 수도 없는 그 많은 숫자가 굶주린 눈으로 선원들에게 달려들고 나면 순식간에 뼈와 옷만 남는 그 끔찍한 꼴이라니!

우리는 탈출용 보트로 치달아 신이 버린듯한 게들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솟아났던 암녹색 빛기둥에서... 나는 보았다! 염수왕이 고래처럼 뛰어올랐다가 바다를 가르며 배를 성냥개비처럼 박살 내버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바다에 빠지게 되었지만, 어떻게든 표류물에 매달린 끝에 이 바위까지 올 수 있었다.

고대의 소아고스가 다시 한번 우리의 바다까지 영역을 넓히려는 것 같다. 오랜 왕께 바친다며 반항하는 선원들을 빠트리던 카루소 선장이 옳았다. 진작 알지 못했던 게 부끄럽다. 저 파도 아래에서 수천 개의 집게발이 딸각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대비하기를. 그리고 신이시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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